영성개발 1강 : 영성의 중요성 - 신성능 박사

by Admin posted Sep 11,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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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hua University & Theological Seminary

144 Main St. 2FL Hackensack , NJ 07601

  

교과 진행표 (Syllabus)

-2011년 가을학기-

  

·       교과목: 영성개발( 영성신학)

·       교수:신성능(근오)박사 (미국: 718-786-9721. Cell 718-249-5455)

·       시간:매주 화요일 오후 1:00-2:00 (2011년 9월-11월)

  

* 학습목표:

1. 그리스도인이란 무슨뜻인가?

그리스도의 영에 지배받는 성령인도 대로 살면서 그분의 영성을 닮아가는 삶이되게한다 나는 죽고 내 삶속에서 그리스도만 드러 나도록하는 것이다.

  

2.교회의 목적과 존재이유를 발견하게 된다 (엡 4:11-13)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며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것과 아는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랑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까지 이루게 하심.

  

3. 건강한 영성, 성숙한 영성, 영적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조건을 알고 경건의 시간 훈련통하여 사역이루며 성화의 단계이루도록 소망한다.

  

* 참고교재:

1). 참된 영성이란 무엇인가? (김상복 목사 지음) 도서출판     횃불

2). 크리스챤의 영성계발 (상.하) (풀시다 지음) 도서출판 횟불

3). 영성개발프로 그램. 중. 고. 대학. 청년부용 (오상철목사저)    (주) 할렐루야서원

4). 기독교 영성 (류기종 지음) 도서출판 열림

5). 영적 문제와 치유2 (홍삼영 지음) Grace Publisher

6). 내면 세계의 질서와 영적성장 (고든 맥도날드 저) Ivp

7). 자아 발견과 영적 성숙 (강준민 지음) 두란노

  

* Course Requirements and Grade Evaluation Criterion

1). 출석: 20%

2). 수업태도 및 참여: 10%

3). 과제: 20%

4). 시험: 50%

  

* 진행 계획: 참조:

(전반부(영성신학) 2011/봄= 1강-8강)

(후반부(영성개발) 2011/가을 =1강부터시작)9월-11월까지

  

(제1강)= 영성의 신앙적 중요점 4가지.

(1). 주도성(Initiative). (2). 은혜 (Grace). (3). 초점 (Focus). (4). 강조점 (Emphasis)

  

(제 2강) = 영성과 구원

(1). 통계화되는 진리. (2). 자유와 약속. (3). 선택의 자유와 책임. (4). 아름다운 인간관계. (5). 존재 가치의 변화. (6). 섬기는 기쁨. (7). 주되심 (Lordship). (8) 거룩함 (Holiness)

  

(제3강)= 영성과 말씀

(1). 말씀과 구원. (2). 아담과 하나님의 말씀. (3). 아브라함과 하나님의 말씀. (4). 모세의 율법. (5). 선지자들과 말씀. (6). 말씀의 사건화

  

(제 4강)= 선교와 영성

(1). 떠날줄 아는 마음 (2) 샬롬 (Shalom). (3). 회개하라. (4). 무력성( Powerlessness). (5). 길 위의 영성

  

(제 5강)= 생활과 영성

(1). 이적과 영성. (2). 건강. (3). 이성. (4). 지식. (5). 직업. (6). 소유. (7). 가치 의식. (8). 은혜와 인격. (9). 종말과 영성

  

(제 6강)= 가정과 영성

(1). 행복한 노예. (2). 자녀와 영성

  

(제7강)= 영성을 위한 방법들 (15가지)

  

(제 8강)= 영성의 삼위 일체적 차원

(1). 성경과 경전. (2). 신론적. 기독론. 성령론. (3). 하나님의 형상과 영성

  

( 제 9강)= 예슈 그리스도와 영성 (예수님의 생애를 통한)

  

(제 10강)= 성령과 영성 (9가지)   *****( 종합정리 & 기말고사) *****

  

(1). 영성이란 무엇인가?

  

1. 영성의 문제점

  

영성이란 무엇인가?

  

앞으로는 영성운동의 시대가 될것이다. 잃어버렸던 영성을 찾는 것이 정상이기 때문이다. 진리는 때를 따라 하나의 물결이 되어 퍼져 나가게 마련이다.  진리가 가려져 잠잠하면 돌들도 소리를 지른다고 하였다. 영성이 빠진 기독교는 허상의 기독교요 죽은 기독교다. 하나님은 이제 기독교에 영성을  불어넣어 죽어가는 기독교에 영성으로 수혈을 시켜 죽어가는 생명을 살리시고자 하신다.

  

그런데 문제는 그 핵심을 바로 알고 가느냐 또는 잘못된 영성의 길로 가느냐가 문제다. 어떤 시대적 변천이 있을 때 마다 거짓 목자들이 기득권을 쥐려고 먼저 설치는 것이 문제이다. (마 7:15) 도날드 카슨은 오늘날 영성운동을 보면서 "유일하면서도 동시에 당혹스럽다" 고 말했다. 여기저기서 영성을 들고 나오는데 실제 영성의 의미를 모르고 해방 영성. 저항의 영성. 여성운동의 영성. 동성애 영성. 겔트 영성. 종교 다원적 영성에 이르기까지 영성이란 단어를 주저 없이 사용한다.

  

영성이란 단어는 아무데나 붙이면 되는 수사학적 단어나 형용사적 단어가 아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하나님의 고유한 성품을 말하기 때문이다.

  

2. 영성의 정의

  

오늘날 영성의 정체성은 무엇이며 어떻게 정의를 할 것인가? 그동안 많은 사람들은 영성의 주제가 사람들에게 있는 것으로 잘못 알아왔다. 영성은 바로 하나님의 성품으로 이것을 지켜나갈 대상이 인간이지 인간들이 영성 자체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다만 인간들은 하나님의 성품을 지켜 살아나갈 피사체 일뿐이다. 어디까지나 주체는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성 (성품) 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하나님과 합일체 (合一체) 가 되어 내속에 하나님의 영이 들어와 체휼되고 느껴지며 하나님이 주시는 방법과 뜻대로 그분의 지시를 따르고 순종하며 순리적인 삶을 살때 하나님의 영성 (성품)이 나를 통하여 나가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말씀대로 사는 삶이며 또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인 것이다.

  

하나님의 영성을 알기위해서는 먼저 '영'에 대하여 알 필요가 있다. '영' 이라함은 눈에 보이는 어떤 형체를 가진 물질이 아니다. 눈에 보이지도 않고 잡히지도 않는 '기(氣)'의 실체이다 (창 2:7). 이것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실재 존재하는 특수 물질로서 정신세계를 이루고 있다. 그런데 이 정신세계를 이루고 있는 '령' 들 중에는 선한 영과 악한 영들이 공존하고 있다. 그럼 어떤 영이 선한 영이고 어떤 영이 악한 영인가? 성경에 하나님은 십계명의 제 1계명에서 나 이외에는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고 하셨다. 즉 진리의 본체이신 하나님 이외의 다른 신들은 진리가 아니므로 모두 악한 령에 속함을 알수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스스로 계신자로 태초에 그분 외에는 다른 신들이 없었다. 다만 그들은 하나님이 만든 모든 창조의 피조물들 속에서 변질된 악한 령들에 불과할 뿐이다. 그러므로 우리 기독교에서 말하는 단어들 중 '영적'. '영성'. '영' 이라는 단어들은 전부 선하신 하나님을 가리키는 영적 단어들이다.

  

영적 존재이신 하나님은 한분의 존재 속에서 세가지일을 하시게 되는데 말씀의 주권을 가지시고 명령하시는 아버지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 구원하시고 마지막때 심판하실 아들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 그리고 하나님 아버지의 모든 말씀을 주관하시며 시행하시는 성령 하나님으로 설명 할수있다. 이 분들을 가리켜 신학적 용어로 삼위일체 하나님이라 말한다. 이 삼위 하나님 중에서 오늘날 우리 인간들과 함께 하시기 위하여 역사하시는 하나님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신 보혜사 성령 하나님이시다. 이렇게 볼때 성령이란 바로 삼위일체이신 하나님이요 우리가 말하는 영성은 그 살아 역사하시는 성령 하나님의 성품 자체를 말하는 것이다.

  

여기서 '영성 ' (靈性) 이란 단어를 살펴보면

영어'Spirituality' 는 라틴어 'Spiritualitas' 에서 파생되었다.

그런데 이 'Spiritualitas' 와 동계어인 명사 'Spiritus' 와 형용사 'Spirituallis' 라는 말들은 모두 '영:'숨' 혹은 '바람' 등을 뜻하는 히랍어 'Pneuma' 와 히브리어 'ruach'와 관계되어있다. 즉 'pneumatikos' 를 번역한 말들이다. 한문으로 신령 영자와 '성품 성' '마음성' '성질 성' 자로 하나님의 성품, 마음 또는 하나님의 성질을 말한다. 하나님의 거룩한 영의 지배를 받는 삶 (성령의 지배 하나님의 성질은 바로 참 선이신 사랑이다). 이 사랑은 바로 Power 요 능력 Dynamite 이다. 하나님은 바로 이 사랑을 통하여 생명을 창조하시고 살리신다. (Dynamic) 이것이 하나님의 성품이시다.

  

3. 영성운동의 필요성

  

이 하나님의 성품은 내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자체이다. 우리는 다만 그분 (성령님) 을 내속에 모셔들어 실존의 성령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며 생활할때 그분의 뜻대로 그분의 간섭을 받게 되어 그분의 성품이 내게서 나가는 것뿐이다. 오직 우리의 본분은 그분의 자녀로서 전능자 능력자이신 하나님 아버지 품안에서 평안과 참 자유를 누리며 그분과 더불어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x-Mas 를 맞이하여 아이들은 들뜬 마음으로 House 에 Tree를 장식하느라 바빴다. 아름다운 장식들을 끝냈다. 밤미 되기만을 기다렸다. 아름답고 찬란한 트리를 생각하며 기뻤다. 밤이 되어 설레는 마음으로 식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전기 스위치를 넣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불이 들어오지 않았다. 어디에선가 전기사고가 난 것이다. 그들의 실망은 컸다. 이와 같이 발전소에서 부터 오는 전기가 중간에서 끊어졌다면 아무리 아름다운 추리를 설치했다 하더라도 그것은 한낱 무용지물이 되고 마는 것이다.

  

우리의 믿음도 이와 같다. 아무리 성경을 많이 읽고 봉사를 많이하고 교회를 열심히 다닌다 할지라도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그것은 전기 꺼진 X-Mas 트리에 불과한 것이다. 바로 영성은 발전소와 같이 영의 근원인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하나님의 성품이요, 이 성품은 사랑이며 사랑은 생명이다.

  

이 영성회복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으로 오신 보혜사 성령님과 함께 살아갈 때 영성은 회복 될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의 잃어버린 영성을 회복시켜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신 보혜사 성령님을 이 땅에 보내셨다. 이제 우리는인간의 삶의 목적인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동행하는 삶을 살아 드려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영성으로 회복되는 것은 필수적이라 할수있다.

  

(2) 신앙은 자연스러운 영성으로 나타납니다.

  

신앙은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영적 원리는 보편적인 삶으로 나타납니다. 영적 원리는 자연법칙이나 삶의 자연스러운 질서와 일치합니다. 물론 초월적인 영역도 있습니다. 우리가 자신의 것으로 소화하지 못한것을"그저 거룩한 것을 말하고 행동한다" 고 해서 우리의 신앙이 그렇게 거룩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은 흔히들 설교말씀을 듣고 나서 자신이 그만큼의 영적 수준을 가지게 되었다고 착각합니다. 설교말씀을 이해하고 그 말씀에 동의하고 기억하여 누군가에게 전할수 있어도 말씀을 전한 지도자와 같은 영성을 갖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믿음은 생각이나 말이 아닙니다. 드러난 행동표현만이 아닙니다. 그보다 더 깊은 중심의 문제입니다. 근본체질의 문제입니다.

  

믿음은 반드시 영적 성장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그 과정을 통해 아기가 어른으로 성장하듯 자신의 믿음을 키워나가야 합니다. 근본적인 삶의 변화를 통해 영적 체질을 바꿔야합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모든것이 변하는 것은 아닙니다. 거룩하지 못했던 자가 갑자기 거룩한 자가 되거나, 불성실했던자가 갑자기 성실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은 요술방망이가 아닙니다. 처음 예수를 믿고 은혜를 경험한 사람들은 자신이 어떤 일이라도 금방 할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이내 변하지 않은 자신의 체질 때문에 좌절하고 절망합니다. 심할 경우 이 문제 때문에 하나님께 배신감을 느끼고 아예 돌아서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문제가 아닙니다.

  

은혜를 주시는 이는 하나님이시지만 이 은혜를 가지고 우리를 하나하나 열어가며 변화시켜야할 사람은 바로 우리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한 형제가 최근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고 180도 달라진 모습을 보였습니다. 소극적이고 삶에 별로 큰 의욕이 없던 형제였는데 지금은 누구에게나 자신에게 행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간증합니다. 어떤 일이건 가리지 않고 적극적으로 의욕을 보입니다. 정말 말 그대로 딴 사람이 된것 같이 보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시작일 뿐입니다. 우리는 죄인이었으나 주의 은혜로 의인이라 칭함을 입은 자들입니다. 예수께서 구원하심으로 우리의 허물과 연약함을 덮어 주신 것이지 이 모든 부정적인 것들이 한 순간에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은혜를 경험하고 나서 깨달아야 할 것은 우리가 은혜없이는 살수 없다는것입니다. 은혜를 통해 내가 무한한 능력을 얻은 슈퍼맨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여전히 허물이 많고 부족하나 이제까지처럼 혼자 아등바등 살 필요가 없이 하나님을 의지하며 걸어갈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형제는 얼마 뒤 깊은 좌절감을 고백했습니다. 그는 은혜받고나서 무엇이든 다 할수 있을것 같았는데 자신의 모습이 과거와 다를바 없다는것을 알게 된것입니다.

  

여기서부터가 시작입니다. 자신의 한계를 깨달을 때마다 그 한계가 우리에게 축복이 됩니다. 우리가 365 일 24시간을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결코 살수 없음을 깨닫는 결정적인 계기이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것은 자기 스스로 겪어가야 합니다. 좌절도 해보고, 또 기고만장해서 하늘을 날것 같다가도 또 다시 꼬꾸라지며 은혜의 주의 십자가 앞에 나오는 것을 삶 속에서 경험해야 합니다. 철저히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자신의 죄인됨을 고백할수 있어야 합니다. 이 과정은 한순간에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살면서 우리의 변하지 않은 죄성 때문에 엎치락 뒤치락 하는 매순간마다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주변에는 구원받은 순간부터 이런 자연스러운 변화의 과정은 무시한채 마치 성인(聖人)이 된 것처럼 위선을 떠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직 자신의 삶은 변화되지 않았으면서 사람들에게 보일 때에는 거룩한 척을 하고 사람들에게 말할때에는 하나님의 일에 대한 것만 말합니다. 얼마나 거룩해 보이고, 얼마나 대단해 보이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것이 그 사람의 생각이나 말뿐이라면 그것은 재앙일 뿐이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 앞에 정직과 신실함은 자연스러움으로 나타납니다. 위선 중에서도 영적 위선이 가장 악한 죄입니다.

  

영적 자연스러움을 점검하십시오, "네 원수를 사랑하라" 는 말씀 때문에 억지로 사랑하는 척을 하는 것은 죄입니다. 차라리 "주님 저는 정말 노력해봐도 제 원수를 사랑할수 없습니다. 미워 죽을 것만 같습니다" 라고 고백하는 것이 훨씬 더 자연스럽습니다. 자신을 해하려 하는 원수 같은 사람을 증오하는 것이 당연한 모습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신앙의 오랜 단계를 거쳐서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큰 사랑을 경험합니다. 이런 과정 후, 우리는 성숙한 영성을 통해 자연스럽게 변화된 태도를 발견합니다. 그 후에는 우리도 사도 바울처럼 자연스럽게 원수를 사랑할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신앙의 과정을 생략해버린채 거룩한 척, 성인인 척만 하다보면 일생을 거짓으로 살다가 신앙과 삶의 패배자가 될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삶은 변화의 장(場) 입니다. 우리는 변화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나를 더 드려서 하나님의 일을 기쁘게 감당합니다. 삶은 처음부터 다 갖춘 척 가면을 쓰고 거짓 쇼를 하나 사라지는 무대가 아닙니다. 우리는 자신을 자신으로 인정하며 가장 자연스러운 삶으로 신앙의 승자가 될수 있습니다.

  

(3). 주권자 하나님을 인정하는 영성

  

우리는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만유의 통치자라고 말합니다. 세상 만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이시지요. 그러나 그런 주권자 하나님이 지금 내 삶에 역사하시는 것을 매일 느끼며 살아가기는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모든 일들이 잘 풀려 나갈때, "곧을 때"는 많은 경우에 내가 잘해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기 일쑤고 잘 안될때, "굽을 때" 는 하나님께 섭섭한 마음이 들어 기도로 심하게 떼를 쓰는 나 자신을 봅니다. 혹 잘 풀려나갈때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 은혜에 감사하기도 하지만 앞이 곽 막힌 것같이 보일때 하나님께 감사 드리기는 쉽지 않지요.

  

우리가 억지로 찾으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우리를 힘들게 하고 고통을 주는 다양한 사건들이 쉬지 않고 우리를 덮쳐옵니다. 심한 풍랑 가운데 홀로 외롭게 노를 저어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때가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인정하든 안하든 이런 모든 과정 가운데 하나님께서 함께하시지요, 그런데 그 하나님이 바로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 뿐 아니라 지금까지와 또 앞으로의 모든 역사를 주관하시고 결정하시는 하나님이 우리를 그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신 하나님 (여 3:16) 이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하나님이라는 (롬 8:32) 것을 깨달을 때 큰 위로와 평강을 얻습니다.

  

지금의 어려운 상황도 또 견뎌야 할 많은 어려움도 사랑의 하나님께서 주관하신다는 사실이 우리가 안심하고 지금 상황을 하나님께 맡길수 있게 합니다. 전지전능 하실뿐만 아니라 사랑의 하나님께서 우리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통치하고 계시지요.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을 보라 하나님께서 굽게 하신 것을 누가 능히 곧게 하겠느냐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 보아라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 사람이 그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 (전 7:13-14)" 고 말씀하신 것같이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굽은 삶과 곧은 삶을 지배하십니다.

"곧은" 시간은 만사형통한 시간이고 "굽은" 시간은 일들이 틀어지고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 입니다. 하나님과 떨어져 있을수록, 말씀과 멀리 있을수록 무질서, 혼돈, 분노, 슬픔과 고통을 더욱 경험하게 되지요. 사실 이런 "굽음"도 우리 인생의 큰 그림에서 보면 퍼즐같이 모두가 잘 맞아가는 것이지만

  

당장 우리 눈으로 볼때는 모든것이 뒤틀어지는 시간으로 보입니다. 때로는 우리의 잘못이 아닌 재난으로 겪는 어려움도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자초한 "굽음" 이든 아니든 "하나님을 사랑하는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 (롬 8:28)" 고 말씀하십니다.

맘대로 되지 않고 뒤엉켜 붙어버린 과거, 우겨쌈을 당하고 있다고 생각되는 현재를 하나님께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가시는 과정으로 볼 때 "굽은" 내 삶의 모습은 더 이상 "굽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모두 "곧은" 것으로 변합니다. 내 삶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알아가기 시작합니다.

  

수학에서 직선은 두 점 사이의 가장 가까운 선이라고 말합니다. 그렇게 보면 성도의 삶 가운데 하나님께로 가장 빨리 인도하는 길, 하나님의 뜻을 가장 빨리 이루게 하는 길이 "곧은" 길이지요. 요셉은 형제들에게 팔림을 당하고 계속 억울한 누명을 쓰고 옥살이를 한 기구한 "굽은" 과정을 지나지만 그 때마다 남을 원망하거나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하나님만 바라보며 믿음으로 역경을 헤쳐나갑니다.

  

어려운 세월이었지만 나중에 보면 그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선을 이루어가는 과정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굽었던 지난 날이 바로 축복의 과정이라는 것을 알고 감사하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는 것이 요셉의 영성이지요.

  

인생은 모든 "굽은" 과정들은 하나님의 계흭 안에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가장 지름길, "곧은" 길이 됩니다. 우리가 힘들 때나 고퉁 가운데에서도 바로 그 것이 "곧은" 길임을 알고 하나님께 감사 드리는 것이 바로 주권자 하나님을 인정하는 영성입니다.

  

(4). 누가의 영성

  

처음 예수를 믿고 성경을 읽는 사람들은 흔히 신약의 4 복음서가 서로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잇다고 생각합니다. 외 같은 이야기를 네 번 씩이나 반복하는가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4 복음서는 서로 다른 특색을 가지고 있는 대상들을 위한 기록입니다. 어떤 복음서에는 언급되지 않은 사건이 다른 복음서에서 나오기도 합니다.

  

이런 차이가 나타나는 이유는 복음서에는 기록한 저자들이 각각 다른 배경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각기 다른 출생과 성장의 배경, 문화, 직업, 성격, 기질 등이 서로 다른 시선과 분위기를 만들어냅니다. 이렇게 각기 다른 특징을 가진 사람들을 통해 복음서를 기록케 하신 이유에는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구속의도와 은혜가 있습니다.

  

누가복음의 저자 누가 (Luke)는 다른 복음서의 저자들인 마태(Matthew), 마가( Mark), 요한(John)과는 다른 이력의 소유자입니다. 그는 유대인이 아닌 그리스인입니다. 그는 제자나 사도 중 한 사람도 아닙니다. 그는 사도들로부터 복음을 전해 듣고 예수를 믿음으로 영접한 이방인입니다. 그는 예수와 함께 생활한 적도 없고, 예수의 말씀을 직접들은 적도 없었습니다. 그랬던 그가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복음서를 쓰게 되엇을까요?

  

당시 예수는 로마가 제패한 거대한 세계 속에서 아주 작은 유대라는 나라, 그 중에서도 구석진 갈릴리의 작은 시골마을 나사렛에서 내어나셧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말씀을 전하며 다니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뒤 다시 부활하시고, 승천하시며 성령을 부으신 이야기를 아는 사람들은 대부분 유대인들이엇습니다. 그런데 그 와중에 복음을 전해 듣고 예수를 믿고 변화된 이방인들이 있었습니다.누가는 그 중에 한 사람이었습니다.

  

이방인들은 예수를 믿어 뜨거운 마음과 열정은 있었지만 구약적이 바탕이 없었기 때문에 아는 지식이 매우 단편적이고 한계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생애와 말씀에 대해 기록한 다른 복음서를 읽어도 율법적 배경이나 제사에 대한 지식 같은 구약적 배경이 없는 까닭에 이해가 어려웠습니다.

  

누가는 이런 이방인들을 위해 그들이 이해할수 있는 방식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다시 정리한 것입니다.

  

누가복음은 누가 자신의 고민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율법이나 구약적 배경이 없는 이방인으로서의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이해하기까지 감당했던 수많은 고민과 시행착오들이 밑마탕이 되었습니다. 누가는 예수가 좋아서 자기가 듣고 믿은 예수의 말씀을 전하면서도 상황마다 자신의 한계를 경험했습니다.

  

예수께 대해 더 깊이 알고 믿고 싶은 마음이 간절햇습니다. 다른 유대인들은 문제없이 이해하는 이야기들을 그는 알아듣지도 이해하지도 못하며 많은 답답함을 느꼈습니다.

  

누가는 자신의 이런 한계 때문에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더 깊은 목마름이 있었습니다. 이런 자신의 고민을 바탕으로 누가는 자신과 같은 목마름을 가진 사람들이 예수를 더 제대로 알고 믿게 하기 위해 그들을 위한 복음서를 씁니다.

이방인들도 바른 지식으로 예수가 걸었던 길을 따르며 동일한 능력과 역사를 행하게 하기 위해 긴 수고의 과정을 통해 문헌수집과 현장조사를 감당합니다.

실제로 누가복음은 다른 복음서에 비해 내용이 깁니다. 그 이유는 이방인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에 대해 세세하게 설명을 추가하고, 또 표현이 불분명한 부분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근거를 정리했기에 분량이 길어졌습니다.

이방인을 대상으로 한 이 누가복음은 다른 복음서보다도 오늘날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구약의  배경에 대해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이것은 사람들이 기존에 정리해 놓은 것을 그냥 갖다가 엮는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자기가 직접 고민하고, 치열하게 뒤져보고, 끊임없이 추구하는 과정을 통해 어렵게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이일을 멈출수가 없는 것은 누가 자신이 예수를 통해 경험한 존재가 바뀌는 놀라운 변화 때문입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말씀을 통해 구원을 얻고 자신처럼 놀라운 새 삶을 살기를 바라는 뜨거운 열정 때문입니다. 그것이 그를 달리게 만들었습니다.

  

누가의 이러한 뜨거운 동기와 시도는 우리에게 큰 교훈을 줍니다.

제자들과 동시대에 살았던 누가도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는 데 잇어서 자신의 문화적, 배경적 한계로 인해 고민하고 치열하게 연구했습니다. 그에게는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해 자신에게 말씀하신다는 확실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2천년이 넘는 시간적 간격과 이스라엘과는 전혀 다른 문화적 배경 가운데 살면서도 말씀을 총체적으로 이해하려는 노력이나 목마름이 부족합니다.

  

누가처럼 말씀을 통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자 하는 열망이 부족합니다.

대신 말씀을 하나의 좋은 격언처럼 듣는 사람도 있습니다. 현실에는 적용하기 매우 어려운 고리타분한 이야기로 듣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말씀은 나의 이야기 입니다. 말씀 가운데서 나를 발견하고 나에 대한 하나님의 의도와 마음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이 세상에서 나를 이해할수 잇는 방법은 없습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며 말씀을 읽을때 하나님께서 보여 주시고, 들려주시며 깨닫게 하실 것입니다.

  

(5). 참된 제자도 (영성지도자)를 설파하는 월라드 박사 강의 내용

  

--국민일보 2011.7.2(토) 기사정리--

(미션라이프)이 시대의 복음주의 지성 달라스 윌라드(76) 박사가 지난 31일 저녁 한국을 찾았다. 그는 값싼 은혜, 공허한 성공을 추구하는 이 땅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의 삶이 얼마나 혁명적이며 짜릿한지를 일깨운다. 우리가 얼마나 그 본질과 떨어져 있는지를 알려주는 영적 스승이다.

  

1.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선하시다는 기본 인식 속에서 어떻게 해야 행복 하는지를 아는것' 입니다.모두가 행복을 원하지만 선함이 우엇인지를 모르는 것이 문제입니다. 선한 것, 좋은 것을 원하면서도 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서 모든 어려움이 나옵니다.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에 대한 이해의 부족 때문에 선함을 알수 없습니다.

  

"스스로의 왕국과 세계를 건설하려면 결국은 실패합니다. 크리스천이라고 고백한 사람들 사이에서도 스스로의 왕국을 건설하려는 욕망의 흐름이 강합니다. 그분의 왕국을 나의 왕국 속에 들어오게 해야 합니다. 그때 행복할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선하고 행복하기를 원하지만 그 둘을 제대로 조합하지 못합니다."

  

그는 크리스천과 제자를 구분한다.

  

크리스천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고백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고백한다고 해서 꼭 제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제자란 '상대와 같은 존재가 되고, 상대가 하는 일을 할수 있기 위해 적절한 조건 아래서 그 사람과 함께 있기로 작정한 자' 이다. 그래서 누군가의 제자가 된다는 것에는 절대적인 전제조건이 있다. 그 사람을 따라야 한다. 같이 있어야 한다. 그 사람처럼 되는 법을 배우고 그대로 실행해야 한다.

  

"오늘날 크리스천 사이에는 그릇된 신화가 있습니다. 제자가 되지 않고서도 크리스천 일수 있다는 것입니다.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자기 찢어짐과 비움, 돌이킴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없이도 크리스천이 될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이 시대의 비극입니다. 이는 지상명령 (Great Commission) 의 중대한 누락 (Great Omission) 입니다. 이 누락 때문에 그리스도인의 현실적 삶과 실제 제자의 삶과는 거대한 괴리가 있습니다."

울라드 박사는 이같은 누락과 괴리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예수의 도를 날마다 배워야 한다" 고 강조했다. 훈련의 중요성을 주장했다.

"크리스천들은 흔히 오직 은혜라면서 노력의 중요성을 간과합니다. 마치 노력이 은혜의 반대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은혜의 반대는 공로이며 날마다 새로워지려는 영적 노력은 제자의 삶에서 절실한 가치입니다. 제자는 혼신의 힘을 다해 예수의 도를 배우고 지키는 자입니다.

  

예수 학교는 지금도 수업 중입니다.

미국의 교회에는 제자가 아닌 크리스천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지도자들이 먼저 참된 제자가 되어 회중들을 제자로 살도록 인도하지 않는 한 개인은 물론 교회나 사회를 새롭게 할 어떤 영적 파워도 나오지 않습니다.

  

윌라드 박사는 '잊혀진 제자도' 에 나오는 말을 했다.

"본회퍼가 말한대로 순종이 없는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기독교와 같습니다. 오늘날 전 세계 기독교에는 그릇된 신화가 있습니다. 바로 제자가 되지 않고도 신자일 수 있다는 신화이지요.

  

은혜를 받으면 순종을 면제받는 것이 아닙니다. 은혜에 의해 올바른 순종이 시작 될수 있습니다. 뱀파이어 크리스천이란 우리 구원을 위해 필요한 그리스도의 피에만 관심이 있을 뿐, 그리스도인으로서 순종하며 제자가 되어 합당한 삶으로 살아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마음과 삶이 변화되지 않고서도 그리스도인이 될수 있는 편리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저는 이 시대 지도자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들은 참된 제자도가 없는 사람들에게 어떤 권세와 근거로 세례를 주며 감히 그들과 하나님이 화목한 사이라고 선포할수 있습니까?

예수의 제자는 소위 전임 사역자라는 종교적 일에 헌신한 자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삶 (목회자이든, 성도든)을 살던 자신의 실제 생활이 예수 제자로서 사는 삶의 장입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오늘이라는 이 시간에 실제의 삶을 사는 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나의 목표는 예수 그리스도가 살아가신 그 모습대로 사는 것입니다. 결국 예수의 제자도는 무엇을 하느냐 (Doing) 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하느냐 (Being)의 문제인 것이지요"

  

2. 미국 교회에서 참된 제자도를 실천하는 목회자가 누구 입니까?

  

그는 릭 어렌이나 빌 하이벨스, 조엘 오스틴 대신 뉴욕 리디머 교회를 담임하는 티머시 켈러 목사를 거명했다. 그는 성도들을 제자로 삼아 그들로 하여금 뉴욕 거리로 들어가 주님의 선하심을 표현하게 하는 켈러 목사의 사역에서 소망을 발견한다. 본질을 상실한 지금, 우리에게는 기독교 신앙의 핵심, 본질로 이끌 사람들이 필요하다. 물론 국내에도 그 본질의 여정을 이끌어줄 분들이 적지 않다.

  

윌라드 박사는 언제나 "하나님 나라" 를 말한다. 그가 강조하는 하나님 나라는 바로 지금, 여기에 (Here and Now)있는 어떤 실체다. 지금 여기서 제자의 삶을 사는 것, 그것이 바로 예수 제자가 누리는 천국의 삶이기 때문이다.

"영원이란 장차 일어나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닙니다. 결코 먼 훗날에 시작되는 것이 아니지요. 지금 여기가 바로 영원입니다. 모든 시간은 영원 안에서 각기 제 갈 길을 가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이 속한 도시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사람들에게 그 행복의 이유를 말해 주어야 합니다."

  

3. 성공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리스천들에게 성공은 거룩함에 이르는 것입니다. 말과 행동에서 성령의 열매가 나타나는 것이 바로 성공입니다. 거룩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며 마음의 혁신을 이뤄야 합니다. 그 혁신은 제자가 되지 않고서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돌아서야 합니다. 자기를 찢어야 합니다. 목회자의 성공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만나 거룩함에 이르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자도가 필요한 것입니다. 교회는 제자들이 모인 거룩한 공동체이며 이 땅의 교회가 숫자적인, 외형적인 크기를 추구하는 것 보다는 개개인들을 주님 안에서 '더 큰 그리스도인 (The bigger Christian)'으로 만드는데 힘을 기울여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승리의 길입니다."

  

4. 한국의 크리스천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은 무엇입니까?

"여러분들은 참으로 독특한 크리스천들입니다. 세계의 영적 변혁을 위한 최전선에 서실 분들입니다. 그 사명을 감당하는 유일한 길은 제자가 되는 것입니다. 나는 단지 크리스천으로 불리는 사람인가, 아니면 예수의 열렬한 추종자로 모든 면에서 그와 같이되며 그와 같이 행동하기를 원하는 제자인지를 질문해야 합니다."

그는 자신의 저서 가운데 일반 성도들은'하나님의 음성'을 먼저 볼 것을 권했다. 그리고 다음 단계로는 '마음의 혁신'을, 더 깊은 단계로 나가기 원하는 분들은 '하나님의 모략'을 읽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가 가는 곳 마다'제자의 삶' 이 전해질 것이다. 빛바랜 사진첩 마냥 잊혀진 제자도의 시대, 크리스천이라는 이름이 마치 '폴란드 망명정부의 지폐'마냥 남발되는 시대에 그의 메시지는 우리가 잃었던 것들을 생각나게 할 것이다. 그것을 기대한다. 한국교회 성도들은 전 세계 리포메이션 (Reformation) 을 담당해야 한다. 리폼 (Reform) 우리의 영적 폼을 다시 잡아 줄 리포머 (Reformer) 들이 이 땅에 필요하다.